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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박힌 일상생활이 도리어 편안하게 생각된다.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일주일 동안의 자유스런 시간은 내겐 주체하기 힘든 하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또 하나 가족들은 여름휴가를 손꼽아 기다린다. 그리고 나에게 휴가 계획을 묻는다. 어차피 가족들의 생각대로 할 거면서도 내 의견을 첫째로 들어보고 시작한다. 귀찮은 절차이지만 가족들은 그것을 예의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여름휴가 자유선언을 했다.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둬, 나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
가족들의 첫 반응은 심드렁하면서도 아주 심각한 척 받아들인다. 속으로는 "아쭈 잔머리 굴리고 있네" 하는 표정이 그대로 보인다.
가족들은 즉시 찬성하고 동정발언을 아끼지 않는다.
"얼마나 힘들겠어?"
"그래 아빠는 푹 쉬어야 한단다."
"절대 아빠 쉬는데 방해하지 않을께."
뭔가 찜찜하긴 하지만 이렇게 여름휴가를 시작했다.
첫날 DVD를 빌려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보다가 자다가 또 보다가 자다가를 반복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면 훨씬 개운할 것 같았는데 웬걸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고 머리도 띵하고 완전히 정신이 하나없다.
둘째날 아침 일찍 배낭에 물통을 5개 넣고 천주산 약수터로 향했다.
풀숲에 아침이슬로 신발과 바지가 흠뻑 젖었어도 기분이 좋다. 정상을 둘러 약수터에서 물을 받아 오는 코스는 두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이른시간 천주산 정상에 서서 창원시를 내려다보니 어찌 그리 멋진지 정말 기분이 상쾌하다.
아침 햇살이 산 능선을 넘어 시가지를 비쳐 나가는 것을 보니 그야말로 장관이다.
느긋한 폼으로 집에 돌아와 늦은 아침을 먹고 있자니 아내가 조근 조근 휴가계획을 내어 놓는다.
이렇게 시간날 때 청주에 사는 동생 집에도 들여다보고, 서울에 사는 시누이도 봐야되고,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왔으니 선산에도 가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조상 돌보고, 시댁식구 만나러 가는 김에 동생집에 들러본다는 데, 반대할 방법이 없다.
2박 3일의 일정을 이미 아내는 잡아 놓고 있었다.
자 출발을 하기 위해서 준비를 해야 하는 데, 이게 보통이 아니다.
밀린 빨래 몽땅 해야하고, 집안 대청소는 물론, 쓰지 않는 물건 골라내어 버릴 것 갔다줄 것을 분리해야 한다.
이런 저런 정리하는 데만 꼬박 1박 2일이 걸렸다.
결국 목요일이 되어서 출발했다.
청주 처제집에 도착하니 처제와 아내의 수다는 밤을 새운다. 아들 녀석도 제 이종사촌들과 어울려 놀 것이 많은지 나는 상관도 안한다.
동서녀석은 학교에서 수련회가 있다고 나간다.
외톨이가 된 나는 수박 한덩이 깨어먹고 지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드는 수밖에 없다.
아침에 아들녀석은 이종 사촌과 놀게 놓아두고 아내와 둘이 강원도 원주로 향했다.
청주에서 원주까지는 두시간이면 충분히 가는데 중부 고속도로를 중앙고속도로로 착각해서 헤매고, 원주 고속터미널 위치가 바뀌어서 그곳을 찾는 다고 헤매고 결국 4시간 걸려 원주 목적지에 도착했다.
작년만해도 원주에 고속버스 터미널이 시외버스 터미널과 같이 있었는데 고속버스 터미널이 깨끗하게 새 단장을 해서 남원주 인터체인지 부근으로 옮겨졌다.
고속버스 터미널 근처에 주차는 꿈도 못꾼다. 경찰이 상주하다시피 있으면서 주차위반 스티커를 붙히고 있다.
비상 깜박이를 켜고 버티면서 간신히 막내 여동생을 만나 태우고 선산으로 향했다.
막내 여동생은 오는 10월쯤 형과 누나가 있는 미국으로 완전히 이사를 할 모양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그만둔다 소리를 못해서 걱정이라고 한다.
결국 우리나라에 나 혼자만 남게 됐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다.
산 기슭에 도착하니 레미콘 공장에서 닦아놓은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흙 구덩이가 심상치 않다.
욕심부리지 않고 안전한 곳에 세워놓고 산에 올랐다.
예상했던 대로 길은 칡 넝쿨과 잡초로 완전히 뒤덮혀있다.
준비해 간 낫으로 풀숲을 헤쳐 길을 만들며 산에 올랐다.
어머니 묘는 대충 삐죽이 솟은 잡초만 뽑아내도 그런대로 볼만했다.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 묘는 잔디도 많이 죽었고, 봉분도 일부 무너져 내렸지만 손 쓸 방법이 없다.
내년에는 삽과 잔디 자르는 도구를 준비해서 그럴듯하게 벌초를 해야겠다.
두시간 남짓 풀을 뽑고 잔디를 다듬으니 그런대로 볼만했다. 내려오며 콩밭을 매고있는 산지기 할머니를 만났다.
여든이 훌쩍 넘긴 나이인데도 정정하다. 요즘은 아들 딸 모두 도시로 나가 할머니 혼자 밭을 일구고 있다.
예전에는 우리 산소도 많이 돌봐주었는데 요즘은 우리 산에 딸린 밭을 포기하고 산소 돌보는 것도 하지 못한다. 버려둔 밭이 지금은 칡밭으로 변해 언제든지 어머니 묘와 할아버지 묘를 덮칠 듯 넘실대고 있다.
아래 큰 길가로 내려와 매년 이용하는 식당을 찾았다. 이 집은 쌈밥이 유명하다.
푸짐하게 이른 저녁을 먹고 구룡사 입구로 향했다.
단골로 정해놓은 유스호스텔에서 방을 잡으려는데 올해는 모 성당에서 수련회를 한다고 3일까지 통째로 빌렸다고 한다.
할 수없이 근처에 5만원짜리 민박집을 간신히 잡았다.
짐을 풀고 구룡사 입구까지 산책에 나섯다. 짙은 숲향기와 개울에 물소리가 정겹다.
아내와 여동생은 살뺀 것을 무용담처럼 늘어놓고 나선김에 살을 더 빼겟다고 산책이 아니라 완전 조깅이다.
나만 혼자 뒤쳐저 어슬렁 거린다.
요즘 여자들은 보통 극성이 아니다.
하루를 구룡사 민박집에서 보내고, 서울 동생집에 들럿다가 다시 청주로 가서 아들을 찾아 싣고 창원으로 내 닫는다.
눈이 저절로 감긴다. 새삼스럽게 고속버스 기사들이 존경스럽다.
칠곡 휴게소에 차를 대고 잠시 쉬었다.
눈을 뜨니 휴가 마지막 날인 3일 새벽 2시다.
가자 집이 최고다. 올해 여름휴가는 또 이렇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