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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지난 주, 우수가 지나서 그런지 봄 내음이 간간히 묻어 나는 것도 같습니다.
많이 바쁘신 와중일 것이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많이 망설이고 주저주저하다 근간의 상황들이 안타까워 고민 끝에 몇 자 적어 봅니다.
지난 새해, 조용히 보낼 심상으로 금원산휴양림에 들어 갔다가 부산사람들로 짐작되는 한무리 사람들의 새벽까지 이어지는 굿소리를 들으며 썩 좋지않은 기분으로 새해를 맞이 했습니다. 새해 벽두에 안타까운 일이 생길 것을 미리 예고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올 한 해만큼은 맘 편히 직장생활 하자며 다짐했던 것과는 달리 의무감인지 성격 때문인지, 지금의 흘러가는 상황들에 대해서 쉽사리 관심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전환점"이라는 칼럼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사람이나 조직, 사회에서 어떠한 특별한 계기나 기회를 맞이함으로 인해 의식이나 환경이 변하는 시점을 규정 지어서 "전환점"이라고 하더군요.
저의 경우를 돌이켜 볼 때, 자라온 환경의 영향일 수 있겠지만 사회문제에 어슬프지만 줄기차게 관심을 두게 된 가장 큰 계기는 고교시절 접한 "한겨레"의 영향이 컷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저에게 "한겨레"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저 이외의 다른 것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한 지렛대 역할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이 아시고는 "빨갱이신문!"이라고 칭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제가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을 멀리할 수 없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 탓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뚜렷한 계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조직"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자연스럽게 "경영학"을 접하게 됐습니다. 지난 몇 년간 경영학과 연관된 서적과 자료들을 닥치는 데로 잡독하면서 느낀 것은 막연하지만 "우리 두산중공업의 노사관계, 이것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우리의 노와 사가 훌륭한 노사관계를 정착시킬 수 있는 기회와 기간은 충분했다고 보여집니다. 노사관계에 관한 한 우리가 다른 곳을 예로 삼지 않고 우리의 노사관계를 다른 곳에서 부러워하며 벤치마킹을 시도할 만큼 좋은 노사관계를 정착시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가 죽어야 끝이 날 정도로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 지금의 상황들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사람과 조직은 변화의 요구나 시도에 대해 어떠한 형태로의 저항을 반드시 표출한다고 했습니다. 그 저항을 효과적이고 긍정적으로 다스리는 것이 변화 필요성과 더불어 변화 과정의 절반 그 이상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경우, 두산그룹에 의해 사기업화 되고 금속노조가 지회를 대신하는 노사간의 환경 변화가 있었습니다. 사기업 후의 경영상 변화 필요성과 노동조합에서 주장하는 금속노조의 필요성은 상호 일견 타당하다 보여집니다.
우리의 노사는 그러한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부정하고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이번 사태와 그 이전의 경우, 대화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는 중대한 요인일 수도 있겠다는 소견입니다.
상호간 너무 많은 손실을 보고 있습니다. 노조 길들이기가 목적이던, 두산타도가 목적이던 간에 중요한 것은 배보다 배꼽이 커져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는 답도 없고 끝도 멀게만 보입니다. 누구의 책임보다 정도의 차이일 뿐 해당 구성원 모두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태의 해결이 많이 어렵다고는 하나 언젠가는 어떠한 형태로던 마무리되겠지요. 그리고 지나온 것은 지나온 것이고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노사 모두를 위해 마땅해 해야 할 일이 더욱더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진정한 노사상생을 위한 준비는 지금이 더 없이 중요하고 좋은 기회라 보여집니다. 어려울 때가 호기라고 했습니다. 지금처럼 노사 모두가 벼랑까지 갔을 때가 전환의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며 변하지 않으면 결코 않된다는 절박함마저 듭니다.
지난 2001년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적을 둔 사업이 어려운 때였고 파업이 한창 이뤄지고 있기도 했습니다. 사업 특성상 단납의 제품이었고 파업이 일정부분은 수주에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고민 끝에 큰 맘 먹고 저녁 모임을 마련했습니다. 양자의 택일이 아니라 노동조합도 살고 사업도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취지였고 제안 했습니다. 주간 파업참가, 야간 작업을 소리소문없이 하자는 결론을 얻었고 또 그렇게 했습니다. 결과가 어떠했던간에 당시의 우리 구성원들이 선택한 어슬픈 노사상생이었습니다.
당시의 노동조합관으로 보면 역적모의나 다름 없었고 전례가 없었던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의 선택이 부질없었고 후회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걸로 여겼던 것을 시도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여건이 어렵고 너무 이상적이라는 말들을 하곤 합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실패할 것이라 확신할 어떠한 근거 역시 없다고 봅니다. 시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선배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 노사간의 관계설정은 워크롤부서의 예와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란 실로 어렵겠습니다. 서로간 넘지 말아야 할 선과 해서는 않되는 일까지 너무 많은 일을 벌인 지금입니다. 현시점에서 모두가 살기 위한 노사상생을 위해선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은 준비기간이 필요하지만 모두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변화된 지금의 상황하에서 노사상생을 위한 선결과제로 노사가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타도와 탄압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의 실체를 인정함에서부터 노사관계를 설정하고 상생을 같이 고민하는 것이 옳다고 보여집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한 쪽이 죽어야 끝이 나는 지금과 같은 어려운 상황의 연속일 것이라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다음으로 두산중공업과 두중지회가 확실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두산그룹으로 넘어간 이상 그룹으로부터 중공업이 자유로울 수 없고 두중지회도 금속노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봅니다. 경제단체간의 약속 같은 것도 있을 수 있고 금속노조의 지침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제자리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지금처럼 우리가 우리 현실을 제대로 이야기하고 우리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하에서는 두산중공업의 노사상생은 말하기조차 부끄럽습니다.
상기의 두 가지는 결정권자의 역할이 크며 당 구성원들이 할 일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렵지만 모두가 살기위해서는 노사의 결정권자가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해결되는 그 시점에서 노사상생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어떤 역할이 있지도 않을까합니다.
끝으로 몇 년 전, 현대에게 서울 사옥을 넘길 때 노사가 하나되어 같은 길을 가던 때를 기억합니다. 저는 이러한 관계가 더 없이 좋게 느껴집니다.
이번 사태가 이른 시일 내에 이상적인 방향으로 마무리되어 2003년이 우리의 노사관계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바쁘신데 제가 막연하고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일전에 저희 과장께서 적게 고민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라는 충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그 말에 수긍하며 이런 고민들이 남의 일같이 부질없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더욱이 저의 위치는 우스게 소리로 노동조합으로 볼 때 어용끼가 다분한 존재고 회사 조직에서 보면 관리대상의 존재인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노동조합이냐 회사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지금의 여건들이 여간 못마땅한 것이 아닙니다.
노동조합이나 회사경영이나 그에 대한 아는 바가 적고 미미한 존재지만 확신하는 바는 저를 위해서라도 우리 노사관계가 지금과 같아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저에게도 2003년은 중대한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먼저 해결되어 있어야 할 것과 제가 설득하고 넘어야 할 산은 산재해 있지만 말입니다.
주말 즐겁게 보내십시오. 봄이 언제쯤 올런지 멀게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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